[기고] 다음 세대를 위한 동물복지, 동물보호를 넘어 지구의 미래를 위한 가치로
글·사진 : 천명선(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조교수)
최태규(에딘버러 수의과대학 석사과정 동물복지 전공)
지난 4월 24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쇤부른궁에서 세계 최초로 동물복지서밋(International Animal Welfare Summit)이 열렸다.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주의자들의 가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로서, 인간과 지구 앞에 놓인 미래의 문제로서 동물복지를 이해하자’는 취지로 열린 동물복지서밋은
동물복지의 개념과 역할을 더욱 광범위하게 확장하고,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함께 찾아가자고 제안했다.
이번 행사는 독일에서 시작돼 전 세계에 지부를 둔 동물보호단체 ‘포 포즈(Four Paws)’가 주관했다. 이 단체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헬리 둥글러(Heli Dungler)는
“인간과 동물을 함께 생각함으로써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으며, 그 시각은 삶에 대한 존중과 생명 존엄성 인식 그리고 인도주의를 기반으로 한다”고 말한다.
포 포즈를 오랫동안 지원하고 있는 요르단의 알리아 공주(Princess Alia)는 이번 행사가 “합리적이고 진취적인 해결책을 찾는 좋은 시작이 될 것”이라며 본 행사의 공식 홍보대사 역할을 수락했다.
오스트리아 대통령 알렉산더 반 데어 벨렌(Alexander Van der Bellen)은 이 행사에 지지를 표명하며, 기념사를 통해 동물복지는 우리 모두가 관련된 문제이며 이번 행사가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했다.
유럽연합 보건식품안전 집행위원 비테니스 앤드리우카이티스(Vytenis Andriukaitis)는 동물복지 정책의 리더로서 유럽연합의 역할과 2017년 새롭게 구성된 유럽연합 동물복지 플랫폼(바로가기)의 주요 사업을 소개했다.
동물복지플랫폼은 유럽연합 차원에서 관계 당국, 관련 산업계, 시민사회 그리고 과학자들이 동물복지 증진을 목표로 대화하는 창구가 된다.
현재는 주요 사업으로 동물복지 레퍼런스 센터를 구성하고, 특히 돼지의 복지와 살아 있는 동물 수송에 대한 복지 증진을 중점적으로 논의한다.
기조연설에서 『경제학의 배신』, 『먹거리의 반란』의 저자인 라즈 파텔(Raj Patel)은 2017년 출간된 『7가지 값 싼 것들에 대한 세계사
(A History of the World in Seven Cheap Things: A Guide to Capitalism, Nature, and the Future of the Planet)』에서 그가 논한 핵심 주제를 ‘동물복지’라는 주제와 연계했다.
그는 우리를 둘러싼 죽음과 살생을 “생명의 그물(Web of Life)”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인간 사회와 자연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비용을 내재화할 수 없는 현재의 식량 생산 시스템을 지속한다는 것은 동물과 인간 모두에게 해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동물복지 증진을 위한 로비 단체이자 캠페인 그룹인 ‘동물을 위한 유로그룹(Eurogroup for Animals)’의 라이네케 하멜리어스(Reineke Hameleers)는
“세계의 동물복지 논의를 이끌어온 EU가 지난 8년 동안 동물복지 분야에서 제도적·실질적으로 정체 중”이라면서 “동물보호에 충분한 책임감을 보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오후 서밋은 주거, 영양, 경제 등 3개의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주거(Habitat) 세션은 인간과 동물이 공존을 위해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를 조명했다.
영양(Nutrition) 세션에서는 가축 생산 시스템과 그 대안에 대해, 경제(Economy) 세션에서는 산업계에서의 동물복지 문제를 다뤘다.
학계, 시민사회, 문화계, 산업계에서 초청된 10여명의 연자들은 각 주제에 대해 스스로의 연구와 활동을 소개하고 세션별 짧은 토론에서 의견을 나눴다.
주거 세션의 첫 번째 연자로 나선 폴 월도우(Paul Waldou)는 인간중심 사고를 바탕으로 동물복지라는 개념이 견고하지 못한 개념임을 인정한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강의한 경험을 들며 “사람들이 동물과 관련된 법에 관심이 많고 법을 강화하고 싶어 하는 흐름은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가 동물복지의 대상으로 둔 동물의 범위는 인간에게 유용한 몇 가지 종, 특히 포유류 일부 종에만 한정된다”고 했다.
현 상황에서 동물에 대한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법과 과학은 서로 소통하지 않으며, 종교는 동물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과 윤리, 과학, 종교가 동물을 둘러싼 환경을 조금 더 인도적으로 만들어왔음은 명백하며, 앞으로 동물복지를 견고하게 다지기 위해 한계를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 조항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법들이 해석되는 사회적 맥락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동물은 도시에서는 가축화된 시민이며, 제한된 지역에 머무르는 경계인이며, 야생에서는 주권을 가진 존재로 인식된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크 피어쉘(Marc Pierschel)은 “Zoopolis”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도시 공간에서 인간과 동물, 환경의 공존을 시도해온
미국 플로리다주의 하모니(Harmoney), 캐나다 토론토의 플랩(Flap), 네델란드 유트레히트의 리이크스바터슈타트(Rijkswaterstaat), 독일 뮌헨의 AAD(Animal Aided Design)를 소개했다.
생태학자 비댜 아트레야(Vidya Athreya)는 인도의 야생동물보전기구인 ‘Conservation India’의 활동을 사례로 고양잇과 야생동물과 인간의 거주지를 둘러싼 갈등과 사회적·문화적 맥락, 보전의 윤리, 해결책에 대해 발표했다.
경제 세션에서는 ‘동물복지를 경제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비비포(BBFAW-Business Benchmark on Farm Animal Welfare)는 주로 식품 도·소매업, 식품 생산업, 요식업 기업을 상대로 농장동물의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기준을 제시하고 압박하는 단체다.
이곳의 활동가 니키 에이모스(Nicky Amos)는 “불과 2012년에 활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대부분의 식품 대기업들이 비비포의 조사와 자료 요구를 무시했지만,
질 좋은 동물복지 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게끔 강제했다”고 했다.
그 결과 불과 5년 만에 유럽에 기반을 둔 수많은 식품 대기업들이 윤리적 가치를 선도적으로 앞세우기 시작했고, 그 기업들은 농부들에게도 더 높은 동물복지 기준을 요구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독일 최대 도축업체 ‘퇴니스 레벤쉬미텔(Tönnies Lebensmittel)’의 동물복지부서장이자 수의사인 요그 알테마이어(Jörg Altemeier)는
도축과 유통 과정에서 동물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과 현실의 벽에 부딪쳤을 때 극복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기업은 무엇보다 책임감과 투명성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다시 생각하는 행위를 통해 전문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동물복지 조사관들은 대충 빈칸에 체크만 하기 일쑤였으나, 조사관들이 도축장을 조사하는 동안 도축되는 돼지들의 상태와 소리가
계속 기록되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함으로써 문제를 개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양 세션에서는 미래의 먹거리, 지속 가능한 대안, 인류의 책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탄소발자국(일상생활, 영업, 제품생산 과정 등에서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의미-편집자주) 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고민했고,
새로운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활발히 연구되는 곤충과 세포배양단백질도 다뤘다.
수의사이자 동물윤리학자인 요그 루이(Jörg Luy)는 ‘동물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주제로 사람들의 가치 부여와 그 방식,
동물복지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것을 고려하는지에 대해 풍부한 통계와 연구로 설명했다. 그리고 미래의 대안에 대해 윤리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지점들을 짚어 주기도 했다.
폐막 토론에 참가한 패널들은 “동물복지가 사치스러운 고민을 넘어서, 인간의 생존과 생존 방식에 대한 중요한 요소”라고 입을 모았다.
우리를 둘러싼 살아 있는 것들, 특히 동물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방식은 인류에게 생존을 넘어선 가치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동물을 가장 싸게 키워 가장 많이 잡아먹는 소비 방식은 이미 우리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 최초 동물복지서밋의 참가자들은 ‘미래를 위해 동물복지가 불가피한 선택이자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발걸음’이라는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